- 가장 들뜬 '경준생' 경찰관 2만명 증원 계획 나오자 "정원 늘면 합격률도 높아질것… 해볼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학원 등록 문의 전화 30% 늘고 대기업 직장인·고교생도 "도전"
30일 오후 1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 한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 막 오전 수업을 마친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100여 명이 건물 밖으로 일시에 쏟아져나왔다. 건물 벽에는 다음 달 개강하는 '단기 속성반'을 광고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모(28)씨는 "오후 수업은 2시에 시작하지만 5분만 쉬고 올라가 수업 전까지 자습할 것"이라며 "올가을에 있을 추가 채용 시험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고 했다.
이날 인터넷의 한 공시생 카페에는 "지금부터 5년이 공무원이 될 최대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을 올린 공시생은 정부가 올 하반기 공무원 1만2000명을 추가로 뽑기로 했다는 기사를 인용하면서 '이번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채용 규모가 다시 줄어들지도 모른다. 기회가 생겼으니 모든 걸 걸어서 승부를 볼 것'이라고 했다. 이 글에는 '반드시 5년 안에 합격하겠다'고 다짐하는 다른 공시생들의 댓글이 수십개 달렸다.
30일 오후 서울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학원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올해 하반기 공무원 1만2000명 추가 채용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오종찬 기자
문재인 정부가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올 하반기에 공무원 1만2000명을 추가 채용하기로 하면서 공시생들이 들썩이고 있다. 40대1이 넘는 경쟁률 때문에 포기했던 사람들까지 '한 번만 더'를 외치는가 하면,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시험에 도전하겠다는 청소년까지 나오고 있다.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이 밀집한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도 공시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A학원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후 학원 등록을 문의해오는 전화가 그전보다 30% 이상 늘었다"며 "특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도전하겠다'면서 직군별 채용 규모를 세세히 묻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B학원 관계자도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고 싶은데 어느 수강반에서 시작하면 되느냐고 묻는 전화가 오늘 하루에만 10건 이상이었다"고 했다.
가장 들뜬 것은 구체적인 채용 확대 계획을 접한 '경준생(경찰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다. 지난 29일 경찰청이 2023년까지 경찰관 1만명을 신규로 채용하려던 것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장 올 하반기에 1617명으로 예정돼 있었던 경찰관 신규 채용 인원이 3100여 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30일 오전 노량진에서 만난 경찰 시험 준비생 김희진(25)씨는 "뽑는 인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합격 확률도 높아질 것"이라며 "평소 관심 없어 하던 친구들도 당장 경찰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경찰 시험을 준비하다 지난해까지 3년간 연거푸 낙방해 고향인 광주광역시로 돌아갔던 김모(28)씨는 지난주 노량진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꿈을 접었었는데 채용 확대 소식을 듣고는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도전해볼 것"이라고 했다.
일반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시험 등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채용 확대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2년째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지윤(30)씨는 "7·9급 채용과는 별 상관없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채용 규모가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올해 초 S대기업에서 퇴사해 중등교사 임용시험 준비를 시작한 한동준(28)씨는 "다른 분야 채용을 모두 확대한다는데 정교사 채용도 결국 늘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고등학생까지 '공시생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한 고등학교 교사 이모(26)씨는 "'수능 준비 대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끝나기 전에 공무원 시험 준비해 미리 취직하는 게 낫지 않냐'고 하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청년 취업난 해소를 위해 공무원을 늘리면서 취업 준비생이 대거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현상이 '사회적 낭 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4월 현대경제연구원은 공시생이 지난 5년 새 38.9%(7만2000명)가 늘었고, 이들이 다른 일자리에서 생산 활동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손실이 연간 17조1429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공무원 일자리만 늘리면 비효율적인 '공무원 쏠림' 현상만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100자평